손끝으로 문장읽기 '사랑의 이해' 마지막 필사 과제와 독서 후기 글입니다.
1. 5차 과제: 필사
먼저, 제가 마지막으로 필사한 문장은 미경의 심정을 표현한 글입니다. 필사한 문장이 포함된 문단 전체가 좋아 그 문장의 앞 쪽 글까지 소개하겠습니다.
'미경은 상수의 곁에 앉았다. 깍지 끼고 있는 손을 바라봤다. 처음 극장 엘리베이터에서 깍지 낀 손, 그동안 무수히 끼고 엄지로 매만지고 뺨에 부벼 보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 물수건으로 닦아 주던, 그 손이었다. 처음부터 보기 좋았던, 상수가 마음에 들어온 뒤로 밤에 누워 혼자 자기 손을 포개 보기까지 하며 미리 쥐어 보던 그 손.'
'미경은 상수를 안았다. 사랑했다. 이 꼴까지 보고도 아직도 상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너절스러웠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다. 지금도 상수의 속이 어떨까, 얼마나 쓰라릴까, 그것이 자기 자신보다 더 아팠다.' -339p
상수는 미경과 만나면서 수영에게 흔들린 것과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털어놓습니다. 미경은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오히려 수영과의 일로 상처 받았을 상수를 걱정합니다. 마치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면서, 미경은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도 상수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랑이란 정말 무엇일까요.
4번째 필사에서도 생각해보았지만, 사랑이라는 건 참 어렵습니다. 아주 이기적인 감정이다가도 이 문장 속 미경의 심경처럼 말도 안되게 이타적인 감정이기도 합니다. 소설 속 미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상수를 2년 가까이 만나면서 말그대로 모든 걸 다 주고 싶을 만큼 사랑했습니다. 그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내 기분도 안좋고, 그가 좋으면 나도 좋은.. 일체감을 느끼는 상태. 상대방인 상수는 아니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요.
그러나, 미경의 화려한 배경과 높은 라이프 스타일 수준에 부담을 느끼면서, 그녀를 온전히 사랑할 수만은 없었던 상수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이 복잡한 감정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의 옛 사랑이 떠올라 아련한 느낌을 받았던 이 장면을 마지막 필사 과제로 해보았습니다. 이제는 그때와 같은 맹목적인 사랑과 주위 시선을 생각하며 고통받았던 연애의 순간은 없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사랑만이 제게 남았습니다. 미경에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오길 바라면서 '사랑의 이해' 마지막 필사를 마칩니다.
2. 독서 후기
대형 은행의 어느 지점의 계약직이면서 각자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수영과 종현 커플, 그들과 같은 지점 정규직 행원이면서 평범한 중산층에서 나고 자라거나 소위 금수저로 살아온 상수와 미경 커플이 소설 속 주인공들입니다.
수영과 종현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종현의 본가가 계속되는 금전적 어려움에 처하고 종현이 경찰 시험을 두 차례 이상 낙방하면서 그들의 뜨거웠던 관계도 식어갑니다. 또, 상수와 미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커플이지만 상수가 미경의 화려한 집안 배경에 부담감을 가지면서 두 남녀가 갖는 사랑의 무게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책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보다 주인공들의 이런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말해주는 게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을 바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의 이해' 라는 책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면 '이해(理解)와 이해(利害) 사이' 라는 책소개가 나옵니다. 딱맞는 소개글이 아닐까요.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사랑을 이어가고 있지만, 경제적인 차이와 사회적 시선에 따른 이해관계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순수하게만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이런 소설을 읽었다면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절실히 사랑한다면,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독한 가난도 상관없고, 혹여나 있을 부모님의 반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사람이 중요한 거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언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도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지면서, 수영과 종현 그리고 상수와 미경 그 모두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처지가 어려운 종현을 위해 잘 곳을 마련해주고, 아내처럼 식사도 챙겨주며 1년이 넘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종종 호텔룸에서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지며 답답한 마음을 이겨내는 수영을 이해합니다. 노력해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집안 형편도 싫고, 경찰 공무원 시험에도 계속 떨어져 자괴감에 몸부림 치는 종현을 이해합니다. 미경과 결혼하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상류층 사회에는 입성하겠지만, 마음에 드는 색의 옷을 입는 단순한 자유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망설이는 상수를 이해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 상수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준 사실을 알고도,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미경을 이해합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겠지만 사랑도 전부가 아니라는 거. 눈물 나지만 현실은 정말 이런 거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랑을 위해 희생합니다. 저는 소설 끝부분의 폭풍 같은 클라이막스에서 수영이 한 극단적인 선택이 그런 종류의 희생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미 불신과 공허가 생겨버린 연인과의 관계를 위해 수영은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아버립니다. 현실만을 생각했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상수와 새롭게 시작하면 됐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종현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모두를 위해 스스로 이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끝내버립니다. 사랑도 전부가 아니지만, 돈도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두 커플의 중간쯤에서 살고 있는 저와 제 연인을 돌아봤습니다. 평범한 우리의 사랑에 감사함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에게 그런 힘든 상황이 닥치면 어떨까 생각해보고 이야기도 나눠보았습니다. 결론은 둘 다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니 상상만으로는 어떤 다짐도 약속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중요한 건 지금이니 이 순간 마음을 다해 사랑하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사랑의 밀랍이 단단해지면 고단한 시간들이 와도 조금은 더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을테니까요. 소설 속 주인공 4명에게도 그런 사랑이 다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사랑의 이해' 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겪는 사랑과 연애, 결혼에 대한 적나라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현대 문학을 읽는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었는데 읽는 동안 재미도 많이 느꼈습니다. 주제 의식이 가볍지만은 않지만, 읽을 때엔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이라 주위에 추천하고 같이 이야기 해보기에도 좋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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