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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경로 강희영 장편소설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책 이야기_Book story

by 초초씨 2020. 1. 1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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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단경로

작가 : 강희영

출판사 : 문학동네

읽은 날짜 : '20.01.11(토)

 

 

'무엇이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그 앎에 갇히고 만다.' -p.162 두 번째 문단, 첫 번째 문장

 

소설의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문장 중 하나이다. 이 문장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명치가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 건 무엇인가 하고. 그 사람을, 그 사건을 완벽히 이해하는 최단경로라는 게 있을까 하고.

 

이야기는 라디오 PD '혜서'가 후임으로 맡게 된 프로그램의 지난 녹음 파일에서 특정 트랙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선임이었던 '진혁'이 의도적으로 숨겨 놓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 트랙을 가지고 그녀는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진혁'과 '애영'의 과거 그리고 현재에 대해 알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이다. 그러나, 책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피해자인 '애영'의 어린 아이와 또 다른 가해자인 '맵만 보며 평소와 같이 그 길을 지나고 있던' 운전자의 이야기는 '진혁'과 '애영'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와 관련해 '애영'은 그 사람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 하면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수많은 비이성적인 판단들이 존재하고, '죄'에 대한 관용이 미약한 사회에서는 그런 상황들이 더욱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눈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정말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 '사고' 와 개인의 잘못만이 아닌 사회도 일부 책임이 있는 '사건' 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현대 사회가 아닌가.

 

작가는 이런 의견을 '가해자의 수동성을 지지' 하는 행위(수상작가 인터뷰 내용 중)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도에서 없어져버린 '진혁'이라는 노드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였다. 노드들의 속사정은 이해 불가능한 것이기에.. 나로서는 끝없는 죄책감을 들고 샌디섬으로 사라진 그가 슬펐다.

 

스포일러를 많이 하고 싶지는 않아서 리뷰는 여기까지만 해야 겠다. 오랜 만에 정말 좋은 소설을 읽은 것 같아 기뻤고,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나서도 즐거웠다. 책 안에는 앞서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차분히 생각해보고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곳곳에 있으니 (예를 들면, 자유 죽음과 같은 것들) 어느 쌀쌀한 날에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나저나.. 비교적 젊은 신인 작가가 쓴 훌륭한 글들을 볼 때마다 나도 이런 치밀하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욕망하건만, 그래도 여전히 그런 글들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사는 이 도시는 아직 덜 썩었나 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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